Forgotten Monuments

사라진 건축


I would say that to put architecture in the chain of history, to be able to interpret and understand why we are where we are, is quite crucial.

-Rafael Moneo, interview with LA Times

 

나는 한국의 전통 건축을 사라진 건축이라 여긴다. 관광지 등 우리 주변에 여전히 남아 있지만 나에게 그것은 멸종한 한반도의 호랑이 박제와 같은 것이다. 수많은 관공서의 기와 지붕도 콘크리트 박스 건물과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 지금 발생하는 수많은 한옥 마을도 과연 그것의 진정성이 의심스럽다. 과거로의 복귀인가? 또는 상업주의의 결과물인가? 진화하지 않은 건축의 복제는 건축의 박제와 같다. 국운이 최저점에 있던 1894년 한국에 방문했던 헤세-바르텍은 서울을 이렇게 묘사하였다.

 

서울의 집들은 단순하고 황량한 황무지나 다름없다. 땅바닥과 거의 구분이 안 되는 납작한 잿빛 오두막의 초가지붕 1만여 개가 마치 공동묘지의 회색 봉분처럼 다닥다닥 늘어서 있다. 도로도 없고, 눈에 띄는 건물이나 사원 또는 궁전도 없고, 나무들과 정원도 없다.
조선, 1894 여름

 

바르텍의 표현이 다소 과격하긴 하지만 그 당시 조선을 방문했던 유럽, 미국인들의 서울에 관한 묘사가 대부분 비슷하다. 당시의 사진과 비교해도 지금의 한옥 마을은 과거의 것의 재현이 아니다. 유행하는 한옥 마을의 좋은 사례인 서촌의 아기자기한 골목과 기와집도 조선의 마을과는 다른 것이다. 현재의 서촌은 일본강점기에 개발업자 (또는 집 장사)가 만들어내 새로운 유형의 한옥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인식 속에는 그것이 한옥에 대한 향수(鄕愁)의 배경이 되었다.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나에게 한옥 마을은 독일의 성과 마을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디즈니랜드 같은 곳이다. 본질은 없고 향수가 만들어낸 허상만 있을 뿐이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의 전통 건축은 사라진 건축이다.

지나친 미화


내가 한국의 전통 건축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것과 현대 건축과의 연계성에 대한 학문적 근거가 빈약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전통 건축의 개념을 사용한 한국의 현대 건축에 대해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건축가들의 전통건축에 대한 개념 사용은 추상적, 관념적이거나 지나치게 은유적이다. 감성과 향수를 자극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용했을 수도 있다. 많은 건축가가 그들의 작업에 마당과 칸의 개념을 두었다고 말한다. 나는 그것과 유럽건축의 중정, 모듈 개념과의 차이를 구별할 수 없다. 마루도 마찬가지이다. 현대의 건축가들이 적용한 마루는 서양의 리빙룸(living room)과 눈에 띄는 차이가 없다. 한국의 건축에서 채움보다는 비움이 중요하다는데 그 개념은 일본의 료한지에서 더 잘 보인다. 가끔은 비움의 개념이 일본을 거친 유럽 건축에서 가져온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한다. 극단적인 비움은 스페인의 현대 건축에서도 보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처마의 곡선을 재해석 했다는 것도 듣기 불편하다. 곡선은 우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전통과 현대의 연계성을 찾기 위해 읽은 전통 건축에 관련한 책은 더욱 절망적이다. 책들의 상당수가 논리적이지 않고 필요 이상으로 대중 친화적이다. 대중 친화적이라는 말은 일부러 미화하는 표현들이 많다는 것이다. 상업성을 위한 것이라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정도가 심하다. 옛 건축의 가공하지 않은 휜 기둥이 자연에 순응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하지만 휜 기둥을 쓴 이유는 구조재로 쓸만한 좋은 목재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정약용의 목민심서에서 봉산(封山: 나라에서 벌채를 금지한 산)의 관리에 대한 중요성에 대한 구절이 있다.[1] 경국대전에서도 소나무 보호에 대한 강력한 정책이 있다.[2] 이처럼 조선은 왕실 건축을 위한 목재 보호에 매우 신경 썼음에도 조선 후기로 갈수록 건축용 나무는 귀한 것이 되었다. 민간에서는 당연히 휜 기둥을 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옥을 살기에는 불편하지만, 현대인에게 운동을 많이 할 수 있게 해서 좋다고 한다는 구절도 있었다. 옛 사람들이 일부러 운동을 위해 한옥을 불편하게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국의 담장이 일본, 중국과 다르다고 한다. 그러한 주장의 근거는 없다. 감성에 기댔기 때문이다. 이 모두가 건축학자들의 책에서 나온 글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외부에서 보는 것보다 더욱 날카롭게 우리 것을 봐야 한다. 지나친 미화는 우리가 진화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1]https://books.google.co.kr/books?id=yvraAwAAQBAJ&pg=PT582&lpg=PT582&dq=%EB%B4%89%EC%82%B0+%EB%AA%A9%EB%AF%BC%EC%8B%AC%EC%84%9C&source=bl&ots=xkpx3PmDM6&sig=ACfU3U32y8_mwgEsBqRqZYUu69-o9V5q7g&hl=en&sa=X&ved=2ahUKEwi_39Sxo6nhAhWMBKYKHd0IBNUQ6AEwAHoECAkQAQ#v=onepage&q=%EB%B4%89%EC%82%B0%20%EB%AA%A9%EB%AF%BC%EC%8B%AC%EC%84%9C&f=false

[2] 역사가 새겨진 나무 이야기 152

 전환


한국 건축의 미화와 비논리적인 관점에 대한 해법의 가능성을 엉뚱하게도 미국에서 찾았다.  2010년 수학 중이던 MIT에서 퓰리처상 수상자이자 보스턴 글로브의 건축 비평가로 활동하던 로버트 캠밸 (Robert Campbell)의 강연이 그것이다. 천천히 말하는 그의 어투에 슬슬 졸리기 시작할 무렵 친숙한 이미지가 눈에 보였다. 그것은 한국의 전통 담장이었다. 그는 바닥의 자연석에서 시작하여  인공적인 패턴으로 바뀌어 가는 변화에 관해 설명하였다. 전통 담장의 이러한 변화가 우리에게 특별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에게 인상적인 부분은 그가 20세기 초 미국의 대표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의 시대의 걸작인 낙수장(Falling Water)의 외벽과 비교했을 때였다. 대지의 자연석이 벽돌로 올라가고 점차 아이보리색 민 벽으로 변해 과는 과정은 전통 담장과 형태적으로 유사함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그는 낙수 장의 재료 선정에 늘 궁금함을 가졌다고 배경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한국 방문 시 담장을 보고 자연에서 점차 인공으로 순차적으로  건축 외벽 재료를 바꾸려는 라이트의 의도를 깨달았다고 말하였다.

 

설사 의도하지 않은 것이더라도 논리적인 분석에 의해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분석이 있다면 현대 건축에도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것이 내가 캠밸의 특강에서 얻은 것이다. 전통담장이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와 같은 의도로 디자인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최초에 누군가 만든 것이 관습적으로 전해 왔을 확률이 높다. 그렇더라도 그것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사람들이 인정해 왔다는 것과 그것이 수많은 시간에 의해 축적되어 사람들의 기억에 상징으로 인식된다는 점은 쉽게 버릴 수 없는 것이다. 분석 할 수 있고 그것을 객관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면 분히 얻을게 있을 것이다.

 

우리 뿐만 아니다. 동아시아 건축에 대한 아시아인들의 태도는 모순적이다. 막연히 좋다고만 하고 그것이 왜 좋은지에 대해서는 명쾌하게 답을 하지 못한다. 이러한 답을 찾기 위해서 철저히 분석적인 자세로 우리의 건축을 바라봐야 한다. 가능하다면 그러한 자세만이 새로운 길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이 탐구의 결과가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러한 시도가 없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동기부여가 된다.

 

건축에서 포스트 모더니짐의 창시자인 로버트 벤츄리(Robert Venturi)는 ‘라스베가스에서 배운 것 (Learning from Las Vegas)’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였다.

 

We look backward at history and tradition to go forward.

-Venturi, Robert (P.3. Learning from Las Vegas)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역사와 전통을 보아야 한다. 최근 100년 동안 우리 만들어온 건축은 마치 판소리를 하는 외국인처럼 어색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 때문에 아직도 우리의 현대 건축이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몇 년 전 외국에서 공부하며 든 의문은 건축은 결국 건축가의 색깔이 중요한 것인데 서구 문화권의 학생들과 유럽에 뿌리는 둔 근현대 건축 공부를 하여 내 개성을 찾을 수 있을지에 대한 것이다. 마치 외국인이 판소리를 배우면 우리는 특이해서 좋아하겠지만, 과연 우리가 그 사람의 실력을 진심으로 인정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과 같다.

 

하지만 그 외국인이 판소리를 자신의 색깔을 묻어내 새로운 것으로 재해석하면 흥미로운 것이 나오지 않을까? 같은 이유로 막연히 현대 건축을 배워 응용하는 것이 아닌 몇 천 년 동안 지속하다 사라져 가는 것을 내 생각으로 응용해 재해석하면 지금까지 보지 못한 새로운 것이 나오지 않을까? 이러한 질문에 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하였다.